가끔 나에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사랑의 시각화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한 적이 있다. 심장을 단순화 시킨 모형인 하트 말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걸까? 나는 이 질문의 답을 그림으로 그린다. 사실 그림에는 정답이 없다. 내가 그려내는 게 곧 정답인 셈이다. 그러나 아무거나 그린다고 다 정답은 아니다. '보는 이들을 설득시킬만한 이미지인가?'가 중요하다.
그림은 내가 모르는 세계를 그리는 것이다. 알듯 말듯한 것들을 표현하는 것이다. 굳은 확신으로 그리진 않는다. 그림을 그릴 때 '이게 맞는 걸까?'라는 질문을 수십 수백 번을 한다. 창작도 어렵고 사랑도 어렵다. 그렇지만 '일단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계속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 이게 사랑이지 않을까 추측하는 것들이 있다. 나는 사랑이 이거다!라고 확신 짓고 싶지 않다. 우선 사랑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인간 관계적으로 봤을 때). 사랑하고 있는 당사자와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시각화를 할 때 사람 한 명만 그리는 게 아닌 꼭 두 명을 그린다. 물론 사랑의 형태는 아주 다양하다. 폴리아모리(동시에 여러 명의 성애 대상을 가질 수 있는 경우)라는 사랑의 형태도 있다. 나는 독점연애(모노가미)를 지향한다.
가족 간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도 사랑의 형태 중 하나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사랑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이와는 별개로 자기애는 중요하다.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 나도 나 자신을 사랑할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랑은 나를 변화시켰다. 나를 살게 만들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삶의 원동력이 됐다.
그가 없으면 보고 싶고,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같이 영화를 보고, 걷고, 술도 마시고, 한 침대에서 같이 자기도 하고. 우리는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그와 함께하는 인생이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계속 함께하고 싶을 뿐이다.
2024.2.23